식욕촉진제 — 고리를 끊는 약이지, 가리는 약이 아닙니다
신부전 고양이가 밥을 안 먹기 시작하면, 보호자는 두 갈래 앞에 섭니다. "식욕촉진제를 달라고 할까, 아니면 원인을 찾을 때까지 버틸까."
답부터 말하면 — 둘 다입니다. 순서가 있을 뿐이에요. 이 글은 그 순서와, 두 가지 약(머타자핀·카프로모렐린)의 정확한 사용법을 정리합니다.
1. 식욕부진은 병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식욕촉진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것 — 안 먹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부전 고양이라면 후보가 꽤 구체적입니다.
- 요독성 구역감 — 노폐물이 위와 뇌의 구토 중추를 자극 (요독증 글)
- 빈혈 — 기운이 없으면 입맛도 없습니다. 조혈주사(다르베포에틴)가 원인 치료
- 구내염·치과 통증 — 먹고 싶은데 아파서 못 먹는 경우
- 탈수·전해질 이상 — 칼륨 저하는 그 자체로 무기력과 식욕부진
- 약이 원인 — 인결합제를 섞은 밥이 맛없어서, 항생제 속쓰림 때문에
- 동반질환 — 췌장염·갑상선 등 (동반질환 글)
그래서 식욕부진이 새로 시작됐다면 첫 행동은 약 추가가 아니라 "뭐가 바뀌었지?"를 찾는 것입니다. 최근 약이 바뀌었나, 마지막 혈검이 언제였나, 구토·침흘림·입 냄새가 있나.
2. 그래도 식욕촉진제가 필요한 순간 — 악순환의 고리
원인을 찾는 동안에도 시간은 갑니다. 그리고 식욕부진에는 고약한 성질이 하나 있습니다 —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것.
이 고리가 며칠 돌면 원인이 해결돼도 고리 자체가 남아서 계속 안 먹습니다.
여기에 고양이 특유의 시한폭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방간(간지질증) — 며칠 이상 굶으면 간이 지방으로 차오르는, 고양이에게 특히 위험한 합병증입니다. 그래서 "밥 안 먹는 고양이"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식욕촉진제의 정당한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원인 치료가 효과를 낼 때까지, 고리를 끊고 시간을 버는 것.
3. 머타자핀 — 반 알의 과학
가장 널리 쓰이는 식욕촉진제입니다. 원래 사람 항우울제인데, 고양이에서는 낮은 용량으로 식욕 증진과 구역 억제 효과를 냅니다.
신부전 고양이 전용 용법이 따로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 일반 성묘 | 신부전·노령묘 | |
|---|---|---|
| 용량 | 1.88mg (15mg 정의 1/8) | 1.88mg — 같음 |
| 간격 | 하루 1회 | 격일(48시간) 1회 |
| 이유 | — |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약이 몸에 오래 남습니다(반감기 연장). 매일 주면 축적됩니다 |
근거는 위약 대조 교차시험(Quimby 2013)입니다. 신부전 고양이에게 1.88mg 격일 투여 3주 — 식욕 증가, 활동성 증가, 구토 감소, 체중 +0.18kg(중앙값). 식욕만 올리는 게 아니라 구역도 같이 눌러준다는 점이 신부전에서 특히 유용합니다.
연고형(귀에 바르는 미라타즈)도 있습니다. 입으로 약을 못 넣는 아이를 위한 선택지로, 귀 안쪽 피부에 바르는 경피 제제입니다(체중 감소 고양이 대상 FDA 승인, 2mg 하루 1회·14일 용법). 국내에서는 조제(컴파운딩) 형태로 접하는 경우가 많으니 병원과 상의하세요.
4. 카프로모렐린 — "배고픔 호르몬"을 흉내내는 새 약
엘루라(Elura)라는 이름의 액상 약입니다. 작동 방식이 머타자핀과 완전히 다릅니다 — 그렐린, 즉 몸이 "배고프다"고 느끼게 하는 호르몬의 수용체를 직접 자극합니다.
- 신부전 고양이의 체중 감소 관리라는 적응증으로 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약입니다(2020)
- 용량은 2mg/kg(0.1ml/kg) 하루 1회, 액상 경구
- 56일 현장시험에서 투여군은 체중이 늘고 대조군은 계속 줄었습니다 — 2주에 +3.3%, 8주에 +5.2%
- 흔한 부작용: 구토(시험에서 약 30%), 침흘림, 기력 저하. 구토가 심하면 지속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머타자핀과의 관계는 "신구 교대"가 아니라 역할 차이입니다. 머타자핀이 "며칠 시간 벌기"에 가깝다면, 카프로모렐린은 만성적인 체중 감소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쪽에 설계된 약입니다. 국내 유통은 아직 제한적이니 사용 가능 여부는 병원에 문의하세요.
5. 한눈에 비교
| 머타자핀 | 카프로모렐린 (엘루라) | |
|---|---|---|
| 기전 | 뇌의 식욕·구역 회로 조절 | 배고픔 호르몬(그렐린) 수용체 자극 |
| 신부전 용법 | 1.88mg 격일 | 2mg/kg 매일 |
| 형태 | 알약(쪼개서) · 귀 연고 | 액상 경구 |
| 덤으로 하는 일 | 구역 억제 | — |
| 어울리는 상황 | 급성 식욕부진의 고리 끊기 | 만성 체중 감소의 장기 관리 |
| 주의 | 과용량 축적(신부전), 행동 변화 | 구토·침흘림, 국내 수급 |
참고로 마로피탄(세레니아)·온단세트론은 식욕촉진제가 아니라 구역·구토약입니다. 다만 구역이 식욕부진의 원인이라면 그걸 눌러주는 것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 그 이야기는 요독증 글에서. 구세대 약인 사이프로헵타딘은 효과가 약하고 투여 부담이 커서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6. 실제 기록 — 반 알이 한 일, 그리고 하지 않은 일
연구소의 신부전 3기 고양이(17살), 지난 7월 기록입니다. 6월 말 혈액검사는 좋았는데 7월 중순부터 식욕이 무너졌습니다.
| 구간 | 하루 섭취량 | 무슨 일 |
|---|---|---|
| 7월 중순~말 | 58g (평소의 3/4 이하) | 구토 4회, 구역약 2~3일마다. 원인은 나중에 확인 — 조혈주사 6주 공백으로 빈혈이 다시 진행 중이었음 |
| 7/27 | — | 머타자핀 반 알 1회 |
| 7/28 | 80g | 다음 날 바로 회복 |
| 8/2~ | 75g대 유지 | 조혈주사 재개 — 원인 치료가 바통을 받음. 이후 머타자핀 없이 유지 |
이 기록이 보여주는 것: 머타자핀은 단 한 번으로 고리를 끊었고, 그 뒤는 원인 치료(조혈주사)가 이어받았습니다. 머타자핀이 빈혈을 고친 게 아닙니다 — 빈혈 치료가 효과를 낼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 것입니다.
7. 식욕촉진제가 가리는 것 — 매일 써야 먹는다면
위험한 사용법은 하나입니다: 원인을 모른 채 몇 주째 매일 쓰는 것.
식욕촉진제를 계속 써야만 먹는 상태는, 뒤에서 원인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요독이 오르고 있거나, 빈혈이 깊어지고 있거나, 어딘가 아프거나. 약이 그 신호를 가려버리면 발견이 늦어집니다.
- 식욕촉진제 시작 후에도 섭취량 기록은 계속 — 약을 쓴 날과 안 쓴 날의 차이가 곧 데이터입니다
- 2주 넘게 의존하게 되면 → 재검 (혈검 + 원인 재탐색)
- 약을 써도 안 먹으면 → 기다리지 말고 병원. 그건 식욕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입니다
8. 병원에 이렇게 물어보세요
- "식욕촉진제를 쓰기 전에, 안 먹는 원인으로 뭘 의심하고 계신가요?"
- "머타자핀이면 — 우리 아이는 신부전인데 격일 간격인가요?"
- "알약을 못 먹이는데 귀에 바르는 형태가 가능한가요?"
- "체중이 계속 줄고 있는데 카프로모렐린(엘루라) 같은 장기 관리 옵션이 있나요?"
- "이 약을 언제까지 쓰고, 언제 재평가하나요?"
9. 함께 보면 좋은 것
- 갑자기 밥을 안 먹을 때, 무엇부터 확인할까 — 원인 사다리의 첫 칸
- 요독증 — 구역감·구토, 집에서 무엇을 하나 — 식욕부진의 가장 흔한 범인
- 동반질환이 있을 때 — 췌장염·갑상선이 식욕을 흔들 때
- 병원 잘 쓰기 — 재검 타이밍 잡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