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와 목표 — 우리 아이는 지금 어디쯤인가
"3기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성적표처럼 받아들입니다. 4기가 있으니 거의 끝인가 싶고, 숫자가 곧 남은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병기는 성적표가 아니라 지시서입니다. "얼마나 나쁜가"를 매기려고 만든 게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하려고 만든 도구예요. 이 장은 그 사용법에 대한 것입니다.
1. 병기는 어떻게 정해지나
국제신장학회(IRIS)의 병기는 크레아티닌과 SDMA로 정합니다. 구체적인 구간표는 앞 장에 있습니다.
SDMA가 병기를 끌어올리는 규칙
크레아티닌과 SDMA가 서로 다른 단계를 가리키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IRIS는 이때 SDMA 쪽을 따르라고 명시합니다.
| 이런 경우 | 이렇게 봅니다 |
|---|---|
| 크레아티닌은 1기 구간(< 1.6)인데 SDMA가 18을 꾸준히 넘음 |
2기로 보고 2기처럼 치료 |
| 크레아티닌은 2기 구간(1.6~2.8)인데 SDMA가 25를 꾸준히 넘음 |
3기로 보고 3기처럼 치료 |
이 규칙이 있는 이유는 크레아티닌이 근육량에 따라 거짓으로 낮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어 근육이 빠진 고양이, 갑상선항진증으로 근육이 녹은 고양이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IRIS는 안정된 상태(탈수 없음, 급성 악화 없음)에서 두 번 이상 측정해 판정하라고 합니다. 탈수 상태에서 잰 숫자는 실제보다 높게 나오고, 그대로 병기를 매기면 한 단계 위로 잘못 올라갑니다.
2. 병기 뒤에 붙는 두 글자 — 서브스테이징
여기가 많은 보호자가 놓치는 부분입니다. IRIS 병기는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뒤에 두 가지가 더 붙습니다.
- 단백뇨 — 소변으로 단백질이 새는가
- 혈압 — 고혈압이 있는가
같은 3기라도 단백뇨와 고혈압이 있는 3기와 둘 다 없는 3기는 예후가 다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병기 자체는 되돌릴 수 없지만, 이 두 가지는 손댈 수 있어요.
서브스테이징 ① 단백뇨 (UPC)
요단백/크레아티닌 비율(UPC)로 봅니다.
| UPC (고양이) | 분류 |
|---|---|
| < 0.2 | 비단백뇨 (NP) |
| 0.2 ~ 0.4 | 경계 (BP) |
| > 0.4 | 단백뇨 (P) — 관리 대상 |
- 단백뇨는 독립적인 악화 인자입니다. 크레아티닌이 같아도 UPC가 높은 아이가 더 빨리 나빠집니다
- 한 번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 2주 이상 간격으로 2회 이상 확인해 지속적인지 봅니다
- 지속적이면 ACE억제제(베나제프릴)나 ARB(텔미사르탄)를 검토합니다
- 단백뇨가 있으면 요로감염이 숨어 있지 않은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서브스테이징 ② 혈압
수축기 혈압으로 봅니다. 기준은 장기 손상 위험에 따라 나뉩니다.
| 수축기 (mmHg) | 분류 | 장기 손상 위험 |
|---|---|---|
| < 140 | 정상 | 최소 |
| 140 ~ 159 | 고혈압 전단계 | 낮음 |
| 160 ~ 179 | 고혈압 | 중등도 — 치료 대상 |
| ≥ 180 | 중증 고혈압 | 높음 — 실명·발작 위험 |
동공이 계속 커져 있거나, 벽에 부딪히거나, 갑자기 겁이 많아졌다면 즉시 검사를 받으세요.
목표는 수축기 160 미만입니다.
3. 병기가 올라가면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나
병기의 쓸모는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할 일이 바뀝니다.
| 1~2기 | 3기 | 4기 | |
|---|---|---|---|
| 중심 과제 | 진행 늦추기 | 합병증 관리 | 증상 조절 · 삶의 질 |
| 재검 주기 | 3~6개월 | 2~3개월 | 1~2개월 또는 더 자주 |
| 식단 | 인 낮추기 우선 단백질 과하게 제한하지 않기 | 신장 처방식 본격 검토 | 먹는 것이 최우선 |
| 인결합제 | 인이 목표 초과 시 | 대부분 필요 | 필요하되 기호성 우선 |
| 피하수액 | 대개 불필요 | 후반부터 검토 | 대부분 필요 |
| 빈혈 | 드묾 | 확인 시작 | 적극 치료 검토 |
| 혈압 · 단백뇨 | 병기와 무관하게 전 구간에서 확인하고 치료합니다 | ||
이 시기에 단백질을 성급하게 제한하면 근육(제지방량)이 빠지고, 그게 오히려 아이를 더 빨리 악화시킵니다. 근육이 빠지면 크레아티닌이 거짓으로 낮아져 상태를 오판하게 되는 문제도 생기고요.
이 시기의 핵심은 단백질 제한이 아니라 인 제한입니다 — 자세한 것은 병기별 식단 전략에 있습니다.
4.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검색하게 되는 질문이고,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검색이기도 합니다.
만성 신장질환은 이제 흔한 병이 되었습니다. 많은 병원이 관리 방법을 알고 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약과 보조제도 늘었습니다. 너무 늦게 발견했거나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못한 경우 짧게 끝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수개월에서 수년을 함께 지냅니다.
생존기간 연구의 중앙값은 수백 마리의 평균이고, 그 안의 편차가 극단적으로 큽니다. 같은 3기에서 몇 달인 아이와 몇 년인 아이가 같은 표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 평균 어디쯤인지는 그 표가 알려주지 않습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 — 기울기
실제로 예후를 말해주는 건 한 번의 수치가 아니라 변화 속도입니다.
- 1년 사이 크레아티닌이 거의 그대로라면, 병기와 무관하게 좋은 신호입니다
- 몇 달 만에 한 단계를 건너뛰었다면, 병기가 낮아도 주의해야 합니다
- 그래서 같은 곳에서 꾸준히 재는 것이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보다 낫습니다
5. 그래서 목표가 무엇인가
이 한 문장이 이 책 전체의 기준선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선이 있으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 수치를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약속은 의심하세요. 네프론은 재생되지 않습니다
-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 수치만 좋아지는 선택은 목표에 어긋납니다
- 수치가 조금 나빠도 잘 먹고 잘 지내면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목표는 이 정도로 잡으시면 됩니다.
- 인을 병기별 목표 안으로 (가장 근거가 확실한 개입입니다)
- 혈압을 160 미만으로
- 단백뇨가 있으면 낮추기
- 탈수를 만들지 않기
- 체중과 근육을 유지하기 — 굶기지 않기
6. 병원에 이렇게 물어보세요
- "지금 몇 기인가요? 크레아티닌 기준인가요, SDMA 기준인가요?"
- "이 병기는 안정된 상태에서 두 번 재서 나온 건가요?"
- "UPC를 봐주실 수 있나요? 단백뇨가 있으면 치료가 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 "오늘 혈압도 재주세요. 조용한 곳에서 좀 있다가 여러 번 재면 좋겠습니다"
- "지금 병기에서 가장 먼저 손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작년과 비교해서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인가요, 느린 편인가요?"
7. 함께 보면 좋은 것
- 혈액검사 신장 수치 읽는 법 — 병기표와 인 목표치
- 신장은 무슨 일을 하나 — 왜 되돌릴 수 없는지
- 병기별 맞춤 식단 전략 — 병기가 정해지면 식단이 정해집니다
- 병원 잘 쓰기 — 병기별 재검 주기와 요청할 검사